지난 8월 29일과 30일 양일간, 경상북도 청도에서 (사)사회혁신기업가네트워크(이사장 남궁정)가 기획한 ‘소셜로컬살롱’이 열렸다. 월례 행사인 기존 ‘소셜이브닝살롱’의 확장판으로 기획된 이번 살롱은, 지역 현장에 직접 발을 딛고 만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청도혁신센터와 함께한 이번 소셜로컬살롱은 다양한 이들이 모여 지역 안팎의 시선을 교환하고 협력의 방식을 상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청도 탐방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사람'과 '공간' 2개의 키워드로 2회에 걸쳐 풀어낸다.
[소셜로컬살롱@청도➀] '옆으로 성장하는 삶' 이야기영리와 비영리, 주민과 정책이 교차하는 관계망그 속에서 지역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힘과 그 가능성
“대부분의 정책 사업이 외부 용역사에 맡겨지다 보니, 정작 지역에는 일자리도 경험도 남지 않습니다. 이제는 밖으로 흘러가던 자원과 경험을 지역 안으로 돌려야 하는 때인 거죠. 청도의 성장은 수직적으로 빠르게 크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넓혀가며 옆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에 더 가까워요.” - 사단법인 경북시민재단 우장한 상임이사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정책과 정돈된 개념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현장마다 고유한 맥락과 그곳만의 감각이 스며 있는 탓에 정보의 확산 또한 더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언어와 경험일지 모른다.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적 아젠다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위기는 인구 4만의 청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청도는 여전히 누군가의 귀향지이자, 삶을 다시 세울 비빌언덕이며, 새로운 실험의 토대가 되고 있었다. 그 힘은 단순한 인구 유입 정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삶과 일을 함께 꾸려가며 옆으로 성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힘은 탄생했다.
삶과 일을 함께 바라보다...옆으로 성장하는 청도의 사람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사)경북시민재단 우장한 상임이사는 ‘지역의 사람’이야말로 소멸위기 지역의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을 주체라고 보았다. 청도가 바라보는 창업가는 서울·수도권 창업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투자 유치, 규모의 성장에 몰두하기보다, 지금의 일을 오래도록 지속하며 지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이다.
이들은 삶과 일을 함께 바라본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지역에서 청년창업가는 더욱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창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곧 청도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된다. 관계를 만들고 수평적으로 성장하는 이들은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관점에서 지역의 기회를 포착한다. 이들의 ‘일’은 관계를 새롭게 짓기도 하고, 마을 돌봄의 공백을 메우기도 하며, 소외된 골목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기도 한다.
(사)경북시민재단이 운영 중인 청도혁신센터는 창업가들이 지역에서 삶과 일을 함께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매개체다. 외부로 흘러가던 역량을 지역 안으로 내재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중첩되도록 연계하고 행정과 소통하는 것 역시 센터의 중요한 역할이다. 폭발적인 성장은 아닐지라도 누구나 청도와 관계를 맺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역동이 모여 청도를 지속시킨다는 것이 센터가 세운 가설이다.
'인간 네이버'로 불리는 사람...관계는 지역을 지탱한다
우장한 상임이사와 청도혁신센터가 지역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도 역시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발제로 이야기를 전한 청도군의회 김종명 정책지원관이 중요한 연결 고리였다. 그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청도로 돌아와 농부로 살아가다가, 중간지원조직 활동을 거쳐 지금은 군의회 정책지원관으로 일하고 있다. 개인의 삶의 궤적이 곧 지역의 변화를 매개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그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과 이들의 실험이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신뢰의 매개 역할을 해왔다. 신활력플러스 사업을 비롯한 경험을 통해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을 남겨야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다양한 세대의 주민 그룹을 세워 지역을 잇는 연결자로서 움직여왔다. “건물은 낡지만, 사람과 조직은 남습니다. 청도를 지탱하는 건 사람이에요.” 김종명 정책지원관이 자처해온 역할은 위기를 직접 극복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시도에 가까웠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지역은 자원과 정보, 사람과 역량을 잃으며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김종명 정책지원관은 ‘인간 네이버’라 불릴 만큼 지역의 크고 작은 일을 기억하고 연결하며 이러한 한계를 완화해왔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제도와 현장을 매개하는 그의 역할 덕분에 청도는 외부 자원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뿌리내리는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이 있어 머물고 싶은 곳: 필자가 청도로 이사한 이유
(사)경북시민재단이 청도에 자리 잡았던 2022년이다. 연고 없이 ‘일’ 때문에 머문다는 낯섦을 해소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해 조직 구성원들은 학습모임을 꾸렸다. 청도와 경상북도를 이해하기 위한 모임은 지식의 공유를 넘어, 지역을 이해하고 사람과 관계 맺기 위한 시도였다. 김종명 정책지원관을 비롯한 3040세대 청년 어른들과 보고서를 읽고 이야기 나누며, 정보 이상의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모임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으나, 같은 궁금증으로 지역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청도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 경험은 필자에게 청도에서 안전한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관계를 계기로 정착을 결심했다. 결심한 순간부터, 주거를 마련하고 생활을 채우는 과정 곳곳에 지역 어른들의 마음과 도움이 이어졌다. 집안에는 이사를 축하하는 화분이 놓였고, 냉장고는 농사 지은 과일과 채소로 채워졌다. 청도의 일상은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현재의 생활 공간 역시 이러한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 필자가 지내는 집은 인턴이나 단기간 머무는 경북시민재단의 청년 근로자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받았던 환대와 관계의 경험이 다음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과정이 청도에서는 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관계가 순환하며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내가 청도에서 확인한 가장 큰 매력이었다. 사람과 이어가는 일상의 힘이 청도에서의 실험을 가능하게 했고, 소셜로컬살롱을 통해 포착하고자 한 장면이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그 중요성이 효과로 나타나는 실제 현장을 발견하는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번 소셜로컬살롱은 숫자로 환산되는 일방적인 정책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의 언어로 쓰여지고 있는 청도의 방식을 포착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소셜로컬살롱@청도➁] 삶을 담는 공간 이야기]함께 작당하고 성장하며, 지역을 지탱하는 공간의 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쌓이고 관계가 머무는 청도의 공간
대도시의 떠오르는 공간들은 소비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단순히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곳이 아니라 스토리와 문화를 함께 경험하도록 설계되고, 때로는 관계 맺기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브랜딩 등의 이름으로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해 기획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 담아낸다. 공간은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고, 외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방문자는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역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소셜로컬살롱에서 만난 청도의 공간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외부 방문자를 끌어들이기보다는, 이미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광장에 가까웠다. 정책 사업으로 조성된 공간은 정해진 대관과 프로그램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연령과 시간대의 사람들이 어울리며 사용된다. 카페라는 상업적 공간은 마을 돌봄의 거점으로 활용되며, 마을의 일상과 사람을 품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두 공간 모두 초기 기획 의도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관계 더 나아가 변화하는 쓰임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로컬임팩트랩, 사람과 관계가 자라나는 공간
소셜로컬살롱이 열리던 날, 가장 먼저 사람들이 발을 들인 곳은 청도혁신센터에서 운영 중인 ‘로컬임팩트랩(Local Impact Lab)’이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대도시와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 운영 시간이 한정적인 작은 지역의 특성 속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기능과 모습으로 변화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시험기간이면 인근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야간독서실이 되고, 영화관이 없는 지역의 여건을 고려해 상영회가 열리기도 한다.
청도에서는 만 49세까지를 청년으로 규정하는 조례로 인해, 청년 행사는 늘 다양한 연령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에 로컬임팩트랩에서는 의도적으로 2030 세대를 찾고, 매월 한 번은 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와 활동을 나누는 런치챗을 운영 중이다. 청도에서 20대가 가장 많은 곳, 청도 군청의 청년 직원들까지 함께 참여하며 만남의 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로컬임팩트랩의 운영 주체는 청도 내부에서 성장한 역량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1회차에서 언급했듯 청도혁신센터가 중요하게 두는 ‘기능의 내재화’라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현재는 ‘노는엄마들(대표 배정란)’이 운영을 맡고 있다. 육아를 매개로 모였던 여성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노는엄마들은 이제 돌봄과 문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조직으로 뿌리내렸다. 주민들의 필요와 상상을 연결하고 기획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로컬임팩트랩은 곧 현재 청도군 보건소 건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이곳은 공공 보건소와 민간 병원이 나란히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로, 공공-민간 의료 협치의 사례다. 코로나19 당시 ‘코호트 격리 1호’ 건물로 지정되기도 했던 이 공간은, 이제 더 많은 주민을 품고 서로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공공성과 실험이 교차하는 또 다른 현장이 되어, 더욱 풍성한 일상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카페 다로리, 마을과 함께 자라나는 공간
이번 소셜로컬살롱은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랐다. 짧고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청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다로리 마을을 찾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읍 중심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사회적기업 (주)다로리인을 중심으로, 생애주기별 삶의 흐름을 담아내는 실험이 이어지는 현장이다. 참여자들은 다로리인 서삼열 대표의 안내로 ‘카페 다로리’를 비롯한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그 이야기에 직접 발을 디뎠다.
서삼열 대표는 2014년, 일곱 가구의 가족과 함께 다로리에 들어와 공동체를 꾸리고 터를 잡았다. 그의 관점에서 창업은 단순히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일이기보다, 마을의 일원으로서 삶의 전 과정이 가능해지는 마을을 상상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카페 다로리는 과거 마을 보건 진료소였던 폐건물을 재생해 만든 곳으로, 음료를 파는 상업 공간을 넘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르신들의 학교로 기능하며 마을의 일상을 지탱하는 거점이 되었다. 돌봄과 교육, 여가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 공간은 다로리인의 실험이 어떻게 생활 속에서 마을을 담아내고 확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실험은 카페를 넘어 마을 전체로 뻗어 나가고 있다. 다로리인은 올해 농촌유휴시설을 활용하는 ‘마을 호텔’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 내 빈집을 숙소와, 영화관 등으로 바꾸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이장님이 직접 나서 빈집을 연결해주었고, 주민들의 수요가 공간 기획에 반영되기도 했다. 잠시 머물고 떠나는 이들이 아닌, 가족 단위에서 장기간 머물며 마을과 관계 맺고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삶의 경로를 제안하려는 시도다.
다로리 마을을 거닐다 보면, 이곳의 변화가 단지 외부인의 시선을 끌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아이를 낳고, 성장하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삶의 전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마을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농촌에서 산다는 건 느린 삶을 선택하는 것일지라도, 다로리에서의 일상은 오히려 삶의 형태를 깊이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마을은 그렇게 삶이 이어지는 거점이자, 관계를 잇고 새로운 가능성을 틔우는 토대가 되고 있었다. 다로리가 보여줄 머무는 마을의 실험을 기대해 본다.
가장자리, 가장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
청도는 경상북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인구 4만의 지역으로, 대구·경산·울산과 같은 대도시의 자락과 맞닿아 있다. 생태학에서는 자연계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성으로 ‘경계’를 꼽는다. 자연 생태에서는 서로 다른 종이나 물리적 조건이 경계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곳은 유기물이 보다 활발히 상호작용하는 장소라 설명한다. 사회학에서도 중심부가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면, 주변부·변방은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해 새로운 시도와 저항이 일어나기 좋은 토대가 된다고 본다. 필자 역시 청도라는 경계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몸소 실감하고 있다.
필자는 과거 약 2년 간 대구에 있는 비영리 조직을 오가며 인턴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그곳에서 역동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가 궁금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공중에 흩어지는 듯한 막막함을 자주 느끼곤 했다. 다양한 지역 아젠다와 그만의 활동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곧 내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구는 큰 광역 도시이고, 청년·창업·기후대응 등 필요한 기능과 운동이 분절되어 일어났던 탓이다.
그래서 필자는 청도에 갔다.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조용한 지역에서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에 설득되었고, 그것이 내 삶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으리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청도에서의 시작이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경북시민재단이 대부분의 아젠다와 기능을 품어내고, 지역의 사람과 조직이 그 자리를 함께 채워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도의 생태계는 공간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아니지만, 각 공간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담아내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간다. 소셜로컬살롱에서 소개하지 못한 더 많은 사람과 공간, 그들만의 이야기가 남아있어 아쉽지만, 궁금한 이들이 직접 청도를 찾아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